월간조선 인터뷰 4화 "친박 핵심들은 '박근혜 하야'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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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월간조선 인터뷰 4화 "친박 핵심들은 '박근혜 하야' 주장... 법 절차대로 탄핵하자고 한 나한테 ‘사과하라’고?"


“박근혜 독대한 적 없는 친박들… 최순실 사태 당시 배신감 느껴”

2016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과거 인연이 있던 최태민씨의 딸 최순실씨가 박 전 대통령의 비호 아래 국정에 개입하며 사익을 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로 인해 같은 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표결 결과는 투표자 299명 중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7표 ▲무효 7표다. 당시 ‘친박’이 80명 안팎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평소 ‘친박’을 자처했던 이들 상당수가 ‘박근혜 탄핵’에 찬성했다는 걸 의미한다.

― '박근혜 탄핵'을 후회하지 않습니까.

“탄핵이란 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박 전 대통령은 더 큰 불행을 겪었을 겁니다.”


―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국민도 폭발했지만, 우리 내부에서도 터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사람이 달라졌어요.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았어요. 박 전 대통령의 집사 노릇을 한 김막업씨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일주일에 3~4일은 관저에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는 대통령이 아무도 안 만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은 수시로 만나서 소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정호성이 서류를 갖고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는 게 아니라 김막업씨한테 줘요. 그럼 김씨는 대통령 방 앞에 있는 조그만 탁자 위에 올려놓고, 대통령은 문 열고 나와서 갖고 들어가서 보고. 난 이거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문고리 3인방(좌측부터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실장)하고는 수시로 만나 '소통'하는 줄 알았는데, 이들조차 대면보고를 못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밝혔다.

― 박 전 대통령의 ‘불통’은 이전부터 다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얘기했다시피, 대통령 되고 나서 사람이 바뀌었어요. 누구도 만나려고 하지 않았어요. 내가 당 대표 되고 나서 누구나 하는 ‘정례회동’을 수십 차례 요청했지만,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당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니 일이 제대로 됐겠습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까 대통령 비서실장조차 대통령과 독대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세상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 분노했습니까.

“친박들도 배신이라고 느꼈지. 최경환, 유정복, 홍문종, 윤상현. 윤상현? 박 전 대통령을 ‘누나’라고 한다는 윤상현 의원에게 대통령과 독대한 일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내가 물어봤는데, 없어요. 소위 말하는 ‘친박 실세’란 사람들이 ‘독대’란 걸 해본 일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 사태가 터졌습니다. ‘최순실을 매주 만났다’ ‘최순실과 국정을 의논했다’고 하니까 배신감을 느낀 거예요. 당내에서 친박의 반대 목소리가 컸다면, 탄핵이 추진됐겠어요? 그 누구도 탄핵하지 말자고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 친박도 배신감을 느꼈다는 얘기입니까.

“그렇죠. 모두 다 박 전 대통령한테 배신감을 느꼈지. 최순실과의 관계를 아무도 모르게 수십 년 유지한 건 ‘대단한 능력’입니다.”


― 소위 친박을 자처한 사람들도 분노했습니까.

“탄핵 표결 직전 의총에서 탄핵 반대 당론 채택 주장을 단 한 명도 안 했습니다. 이때 장면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 당시와 비교해 보세요. 본회의장에서 울고불고, 애국가 부르고, 난리 났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표결 직전 의총에서 친박 핵심들은 침묵했습니다. 그래놓고서는 지금 와서 다 나한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겁니다.”



김무성 의원은 '최순실 사태' 당시 서청원(좌)·최경환(우) 등 친박 핵심들이 청와대에 '대통령 하야'를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 당 대표를 지낸 입장에서 왜 최순실 사태 이후 터져 나온 ‘박근혜 하야’ 공세를 방어할 생각은 안 했습니까.

“그게 방어가 됐을 거라고 봅니까?”


― ‘정치는 타협’이라고 강조해 왔던 만큼, 그때도 야당과 타협을 했어야죠.

“당장 하야하라고 하고, 끄집어내려라, 죽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방어할 수 있습니까. 차기 대권 주자 1등(문재인), 2등(안철수)이 광화문광장에 앉아서 하야하라고 소리쳤잖아요? 내가 ‘사태를 수습해 달라’는 이정현 당시 대표 부탁을 받고 이 사람들 만나서 ‘광장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진 못할망정 부추기는 연설을 하는 건 대통령이 될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니다. 임계점을 향해 가는 광장의 분노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고 와야 한다’고 했어요. 그게 ‘탄핵’입니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마치고 김무성 의원과 ‘비박 동지’ 김성태ㆍ권성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김 의원은 2016년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제기된 이후 진행된 소위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탄핵’을 주도했다.

― 두 사람은 뭐라고 했습니까.

“반대했습니다. 당장 하야하라는 거였죠. 그건 민중봉기 아이가? (2016년 11월 28일, 서청원·최경환·홍문종·윤상현 등 친박 핵심 8명이 ‘박근혜 하야’를 건의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여주며) 내가 탄핵 절차를 주도해서 나라 망했다고 다 뒤집어씌우는데 그때 친박들은 뭐 했노? 친박 핵심 중진들은 박 대통령한테 하야하라고 했어요. 법 절차대로 탄핵하자고 한 나한테 ‘사과하라’고? 이게 말이 됩니까? (김진태 “박 대통령 탄핵, 혼돈보다 나라 위해 나은 선택”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여주며) 김진태도 탄핵을 주장했어요. 그 논리대로라면 ‘박근혜는 당장 내려오라’고 한 그 사람들은 ‘배신자’ 아닙니까?”


― 당시 청와대는 탄핵 절차를 밟는 데 대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마지막에 이정현 대표, 정진석 원내대표가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을 만났어요. 그 자리에서 정진석이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다. 찬반에 대한 당론은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탄핵이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얘기했어요. 박 대통령 반응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였어요. ‘막아달라’는 말은 일절 없었다는 거야. 광화문 함성 듣고 계엄령 얘기까지 나오던 상황이었으니까 차라리 그렇게 되는 게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박근혜는 국민으로부터 받은 대통령 권력을 사적으로 최순실에 넘겨줘”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받은 대통령의 권력을 사적으로 최순실에게 넘겨줬다"고 확신했다.

― 정말 탄핵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까.

“대통령이 아무 일도 못하고, 국정이 마비된 상황을 계속 끌고 가는 게 맞습니까? 수십만 명의 촛불시위대가 청와대 100m 앞까지 갔잖아요?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이때 현장에서 피를 봤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우리나라는 특수한 상황 아닙니까? 누가 의도적으로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면 폭발하는 겁니다.”


― 대통령이 소통을 안 했다고 해서 탄핵할 수 있습니까.

“아니죠. 국민으로부터 받은 대통령의 권력을 사적으로 최순실에게 넘겨줬어요. 그것 때문에 탄핵이 된 거예요.”


―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들어서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사적 이익을 취했습니까.

“누가 뭣 때문에 최순실한테 수백억 원을 줍니까?”


― 최순실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었잖습니까.

“그거 인적 구성을 누가 했어요? 최순실 마사지하던 사람이 K스포츠 이사장 했잖아요? 어디 교수 직함이 있던데, 자기는 억울하겠지.”


―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사실이라고 확신한다는 얘기입니까.

“사실이라고 확신하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거 아닙니까?”

― 김영삼(金泳三) 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했습니다. 당시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의 국정 개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현철이는 YS한테 특별한 존재야. 노태우한테 지고 난 뒤에 5년 동안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현철이가 많이 했어.”


― 지금 기준으로 보면 김영삼 대통령도 탄핵감입니까.

“지금 와서 그런 얘기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건 말꼬리 잡기밖에 안 돼요.”


― 탄핵은 물론 분당을 주도해서 ‘보수 분열의 주범’이란 비판도 받습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한테 탈당하라고 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보수가 죽는다고 했는데, ‘나는 1원도 받은 일이 없다’면서 안 나갔어요. 세상이 이미 뒤집힌 상황에서 우리가 대선에 이길 수 있었겠어요? ‘문재인 대항마’인 반기문 총장이 새누리당에 들어오려고 했겠습니까? 그래서 분당을 했는데, 반 총장이 귀국 20일 만에 대선 출마를 포기했습니다. 반 총장이 그때 바른정당에 왔으면 ‘친박당’은 없어졌을 텐데, 내가 실패한 거지.” (5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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