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인터뷰 3화 "모든 비극은 공천파동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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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월간조선 인터뷰 3화 "모든 비극은 '공천 파동'에서부터 시작됐다. 나는 국민에게 공천권 돌려주는 '정의' 지키려다 '제왕적 권력'에게 졌다"


“청와대의 ‘대통령 탈당 검토 지시’ 정보 접하고 유승민 사퇴 설득”


2015년 7월 2일, '유승민 파동' 당시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 자진사퇴를 촉구하자 김무성 대표가 "회의를 그만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있다.


― ‘유승민 파동’ 당시 왜 유승민 원내대표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습니까. 청와대에 반기를 들면 자신의 대권 도전이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까.

“유승민 사퇴 여부를 결정하는 1차 의총을 앞두고 의원들과 점심·저녁 먹어가며 ‘유승민은 잘못이 없다’고 설명해 ‘유승민 유임’ 결정을 이끌어냈는데, 그날 저녁에 청와대에서 ‘탈당 검토’ 지시가 떨어졌다는 겁니다. 저쪽에서 부인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이건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나온 정보입니다.”

― 당 대표와 원내대표 모두 ‘비박’이라서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탈당을 검토하란 얘기가 나온 겁니까.

“대통령의 탈당을 검토하라는 지시였습니다. 대통령이 탈당하면 당이 깨질 가능성이 있으니까 유승민 의원을 설득했는데, 유 의원이 ‘난 못하겠습니다’라고 거부했어요. 파국을 막기 위해 2차 의총 때는 손을 쓰지 않았고, 그때는 ‘이 정도 됐으면 원내대표가 손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돼서 결국 유 의원이 사퇴했습니다.”

― 2016년 당시 ‘공천 파동’도 결국 ‘유승민’ 때문에 일어난 거죠.

“그게 이어지는 거죠. 그 ‘공천 파동’에서부터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나는 권력자에게서 공천권을 빼앗아 국민에게 돌려주는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면서 당 대표를 한 사람입니다. 대표가 된 이후 상향식 공천을 할 수 있도록 의원들을 설득해서, 당헌·당규를 고쳤습니다. 선거법도 개정했는데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이 나한테 ‘형님, 할매(박근혜) 퇴임 이후를 생각해서 TK(대구·경북)만큼은 할매 영향력하에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해요. 못한다고 하니까 ‘그럼 대구만 넘겨주시오. 유승민+6~7명을 넘겨주시오’라고 하는 거예요. 나는 계속 못한다고 해서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김무성(우) 의원은 ‘유승민 파동(2015년)’ 당시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을 검토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파국을 막기 위해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라”고 유승민(좌) 의원을 설득했다.

― 왜 ‘상향식 공천’을 그렇게 밀어붙인 겁니까.

“나는 민주화 투쟁을 했던 사람인데, 정당 판에 와보니까 민주화 투쟁을 하던 야당도 비민주적이야. 공천이 그랬어요. 말 잘 듣는 사람, 돈 많이 갖고 온 사람에게 공천이 가더란 말이에요. 공천 과정을 보니까 더러워요. 국회의원이 자기 철학과 소신에 따라 정치활동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공천권에 묶여서 그게 안 되더란 말입니다. 그때부터 내 정치 목표를 권력자로부터 공천권을 빼앗아서 국민에게 돌려주는 걸로 잡았어요.”


― 권력자로부터 공천권을 빼앗는다고 하면, 실제 ‘권력’이 가만히 있습니까.

“친박이 회의 때마다 나를 모욕하고, 난리를 피웠는데도 나는 참고 있었습니다.”


― 왜 참았습니까.

“‘상향식 공천’은 휴대전화 여론조사로 경선해야 합니다. 여론조사 경선을 위해선 안심번호(위장번호)를 채택하고, 이동통신사 3사가 전국 모든 휴대전화 번호를 위장번호로 만들어야 합니다. 위장번호 추출 시간·비용을 감안하면 최소 24일이 필요했어요. 친박에선 이걸 아니까 기간을 지연시켜서 ‘여론조사 경선’을 못하게 하려고 내게 싸움을 걸었지만, 속내를 뻔히 아는 나는 그 수모를 참고 버텼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버텨서 전체 공천 중 87.43%는 ‘상향식’으로 했어요. 지금 초·재선 상당수는 자기 실력으로 당선됐는데, 그걸 모르고 박근혜 전 대통령 덕분에 됐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12.57%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한 ‘청와대 공천’입니다.”


― 그렇게 ‘상향식 공천’을 강조했으면서, 왜 또 ‘소신’을 굽혔습니까.

“내가 협상가 타입이니까, 부당하지만 참았습니다. 안 그러면 선거 자체를 못 치르는 상황이었잖아요? 큰 탈이 없는 건 합의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민에게 공천권 주는 ‘상향식 공천’ 이루려고 불가피하게 친박과 ‘타협’”



김무성 의원에 따르면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현기환(우)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은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에게 전화해 청와대가 대구ㆍ경북 지역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 그럼 왜 애초에 이한구 전 의원이 공천관리위원장에 앉는 걸 보고만 있었습니까.

“왜 줬느냐? 현기환 정무수석이 ‘할매가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이한구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반대했지만, 최고위원 9명 중 내 편을 든 건 김을동 의원 1명뿐이었어요. 나머지는 전부 표결하자고 했어요. ‘7:2’니까 표결해 봤자 아니에요? ‘상향식 공천’에 필요한 시간은 촉박하고, 저쪽은 계속 표결하자고 하니까 ‘이한구’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공천 과정에서 이한구 공관위원장과 대립했는데도, 소위 ‘김무성계’ 의원들이 공천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뭡니까.

“단독으로 공천 신청한 곳이 25개 지역이었는데, 거의 나하고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상식적으로 현역 국회의원이 ‘단독 신청’했으면 제일 먼저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사람들은 나 때문에 자기들 죽는가 싶어서 잠도 못 자지, 내가 당 대표인데도 공천 심사받았잖아요? 날 꼼짝 못하게 하려고 이 사람들을 다 잡아놓다가 마지막 날 하루 전에 줬어요. 당 대표인 나도 마지막에 받았습니다.”




김무성(우) 의원에 따르면 20대 총선 전, '박근혜 청와대'는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 의원에게 공천관리위원장에 '이한구(우)'를 앉히라고 요구했다. 김 의원은 "이한구는 안 된다"며 거부했지만, 친박 일색이었던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한구 안'을 밀어붙였다. 이한구 전 의원은 소위 '공천 파동' 주역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 자기 측근들의 공천을 챙기기 위해서 친박과 ‘거래’한 건 아닙니까.

“그런 일 없습니다. 나는 내 자존심을 지키려고 비례대표 후보조차 단 1명도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 ‘공천 파동’의 ‘대미’를 장식한 게 ‘옥새 갖고 나르샤’죠.

“그것 때문에 내가 욕을 많이 먹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앞으로 이런 소리를 하면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생각입니다. ‘유승민과 그 일당 몇 명만 죽이자’고 했는데, 난 ‘손 못 댄다’고 했어요. 친박들도 ‘유승민 죽이면 수도권 선거 못 치른다’고 했는데, ‘대통령의 뜻’이라고 하니까 돌아선 거예요. 나는 끝까지 유승민을 지켰습니다. 지금도 내가 도장 갖고 갔다고 생각합니까?”


― <월간조선>은 당시 당 대표 직인이 당사 금고에 있었다고 이미 보도했었습니다.

“마지막 6곳이 남았는데, 여론조사에서 1위와 큰 차이가 나는 2위, 4위를 올린 거예요. 그래서 ‘당헌·당규에 심히 위배되는 공관위 결정을 최고위원회의에서 의결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기자회견을 하고 지역구로 내려갔습니다.”


2016년 3월,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이한구 공관위’의 ‘유승민 죽이기 공천안’에 반대하면서 공천장에 당 대표 직인 날인을 거부한 채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시 영도구로 내려갔다.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 ‘옥새 갖고 나르샤’라고 불렀지만, 실제 당시 새누리당 대표 직인은 당사 금고 안에 있었다.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공천 과정에서 당헌·당규에 따라 원칙과 정도의 길을 갔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 수없이 생겼다”며 “공천권을 국민과 당원에게 돌려드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어 “잘못된 공천을 최소한이나마 바로잡아서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한구 공관위’가 마지막으로 후보를 결정한 5개 지역구에 대한 최고위원회의 의결과 당 대표 직인 날인을 거부하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시 영도구로 내려갔다.

― 그때도 하루 만에 당무 복귀를 했습니다.

“원유철 원내대표가 따라 내려와 설득해서 하루 있다가 올라왔는데, 이걸로 ‘왜 끝까지 버티지 올라왔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는 타협이에요. 양보를 안 하고 어떻게 타협을 합니까?”


― 새누리당 내부의 ‘공천 파동’이 생중계되듯이 바깥에 알려져서 총선에서 망했습니다. 책임 통감합니까.

“정의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닙니까?”


― 그처럼 강조하는 ‘타협’을 일찍 해서 ‘공천 파동’을 막았다면 괜찮지 않았을까요.

“그나마 그리 안 했으면 더 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 20대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에도 ‘상향식 공천’ 원칙을 무너뜨린 친박과 같은 당에서 왜 ‘동거’했습니까.

“방법이 있나? 내가 게임에서 진 건데. 그게 권력이야. 권력 게임에서 내가 진 거야. 제왕적 권력에 내가 이길 방법이 없었지. 그래서 제왕적 권력을 분산시키는 개헌을 하자는 겁니다.” (4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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