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인터뷰 2화 "박근혜는 당권잡고 날 죽였지만, 나는 박근혜의 대선 승리와 '4대개혁' 성공 위해 총대 멨다!" [출처] 김무성 월간조선 인터뷰 2화 "박근혜는 당권 잡고 날 죽였지만 , 나는 박근혜의 대선 승리와 '4대 개혁' 성공 위해 총대 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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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월간조선 인터뷰 2화 "박근혜는 당권잡고 날 죽였지만, 나는 박근혜의 대선 승리와 '4대개혁' 성공 위해 총대 멨다!"




“박근혜한테 찍혀 공천 못 받았지만 ‘분열=필패’란 생각에 ‘백의종군’”

2009년, 김무성 의원은 ‘세종시 파동’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식적으로 갈라섰다. 이듬해 5월, ‘친박’에서 탈피한 김 의원은 ‘원내대표’에 추대됐다. 불과 2년 전, ‘친박 좌장’이란 이유로 자신을 떨어뜨린 친이계의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이렇게 얘기했다.


“일이 안 풀리니까 MB가 또 원내대표 하라고 제안했어요. 그때는 내가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했죠. MB가 ‘김 대표, 절대로 박지원 믿으면 안 된다’라고 걱정했지만, 그때 MB 원하는 대로 다 해줬어요. 나랑 박지원 의원이 여야 원내대표 할 때 최고로 잘 돌아갔어요.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서 박 전 대통령이 당권을 잡고 날 죽였잖아요.”


― 2012년 박근혜 비대위 체제에서 또 공천을 못 받았죠.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대선을 불과 10개월 앞둔 상황에서 분열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결국 ‘백의종군’을 선택했습니다.”


― 그 뒤에 박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후보로 선출되는 걸 왜 보고만 있었습니까.

“나는 낭인이었는데, 무슨 방법이 있노? 박 외엔 후보가 없었어요. 내가 반대한다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 당시 ‘박근혜 캠프’엔 왜 참여했습니까.

“문재인(文在寅) 후보가 이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 나중엔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서 캠프를 지휘했습니다.

“처음엔 소극적으로 ‘박근혜 캠프’에 참여했는데, 선거조직 기구표조차 제대로 못 만드는 거예요. 아까워서 자리를 못 주는 거야. 명함 1장 파주는 게 뭐가 그리 아까워서 안 줍니까? 대선 조직은 무한정 키워야 합니다. 임명장을 남발해서 도와달라고 호소해야 돼요. 그게 안 되니까 박 전 대통령과 경선을 치렀던 김태호, 임태희, 안상수 의원하고 내가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 서병수 사무총장을 만나서 이대로 가면 진다고 했더니 ‘그걸 후보한테 얘기 좀 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자기들은 말 못하겠다는 거지.”


― 껄끄러운 사이인데 어떻게 얘기했습니까.

“다 같이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대선 이기라고 백의종군했는데, 이대로 가면 선거 진다’고 하면서 ‘후보가 결재하면 안 된다. 남에게 맡겨라’라고 얘기했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박 전 대통령이 ‘선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걸 알아서 해주십시오’라고 하니까 다들 ‘아이고, 잘됐다’고 하는데, 나는 선대위원장 대신 급을 낮춰서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실무를 책임지겠다고 얘기했습니다. 또 ‘나는 후보님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어떠한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왜 그런 이야기를 먼저 했습니까.

“당선을 기정사실로 알고 여의도의 사무실이란 사무실은 다 잡아놓고 자기들끼리 어떤 권력을 가져갈 건지 혈안이 된 사람들을 정리하려면 내가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총괄선대본부장 맡고 나서 선거기구 조정하고, 당사 3층 조그만 방에 침대 가져다 놓고 잠도 거의 안 자면서 서류 처리하고, 후보 면담하러 온 사람들 대신 만나고, 하루에도 열댓 번씩 임명장 주고 사진 찍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조직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결국 대선에서 이겼습니다. 나는 그때 편지를 써 붙이고 떠났잖아요?”


2012년 12월 21일, 선대위의 총괄사령탑을 맡아 ‘박근혜 당선’에 기여한 김 의원은 당사 3층 사무실 문에 편지 1장을 붙이고 떠났다. 당시 그는 편지에서 “여러분, 너무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제 제 역할이 끝났으므로 당분간 연락을 끊고 서울을 떠나 좀 쉬어야겠습니다. 제 마음속의 큰절을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사의를 표했다.


2014년 7월, 당시 김무성(우) 새누리당 의원은 전당대회에서 3만 9,553표를 얻어 청와대와 친박의 지원을 받아 2만 8,427표를 얻은 서청원 의원을 1만 1,126표 차로 누르고 대표최고위원에 당선됐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공천에서 배제됐던 김무성 의원은 이듬해 4월 24일 실시된 국회의원 재선거(부산 영도구)에서 득표율 65.66%를 기록하며 당선해 국회로 돌아왔다. 김 의원에 따르면 당시 당 지도부는 그에게 공천을 주지 않으려 했다. 다른 ‘제안’을 하며 그를 회유하려 했지만, 김 의원은 이를 거부하고 출마해 다시 살아 돌아왔다.

“국회에 돌아와서 가만히 있었는데, 역사교과서가 엉망이란 걸 알게 돼서 ‘근현대사역사교실’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7시30분에 모여 샌드위치 먹어가며 공부하기로 한 건데, 개강일에 의원들이 한 60명 왔나? 공교롭게도 개강일이 박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일이었습니다. 이걸 보고 청와대 보좌진이 ‘김무성이가 대통령 첫 해외 순방 가는 날 보란 듯이 의원들 수십 명을 불러모아서 계보 발대식을 했다’고 모함했습니다. 대통령한테 그런 식으로 매일 나에 대해 안 좋은 보고를 올리니까 전당대회에서 청와대가 나를 당 대표에서 떨어뜨리려고 적극적으로 개입했는데, 큰 표 차로 이겨버렸지.”


― 당시는 이미 박 전 대통령과 ‘결별’한 상태였는데, 왜 ‘원조 친박’이었던 사실을 강조했습니까.

“아니, 자꾸 친박들이 그쪽으로 뭉치니까 내가 ‘원조 친박’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 당 대표 당선 직후 수락 연설에서 “박근혜 정부의 성공만을 위해 온몸을 바치겠다”고 했는데요. 진심으로 한 얘기입니까.

“그렇습니다. 실제로 내가 당 대표 할 때 박근혜 정부 정책에 어깃장을 놓은 게 있습니까? 박 대통령의 ‘4대 개혁’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친박들한테 물어보세요.”


― 청와대와 다른 의견을 성급하게 내놨다가 이내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며 발언을 거둬들이는 모습을 자주 보였는데요. 그걸 세간에서는 ‘30시간의 법칙’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아무 말 안 했으면 모르겠지만, 절대 안 된다고 하면 내가 굽혀야지, 우짜겠노?”


― 그렇게 일찍 굽힐 심산이었다면 애초에 얘기하지 말든지, 아니면 사전에 청와대와 논의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럼 내가 대통령하고 싸워야 하나? 내가 사과하고 바보 되고 끝낸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 여당 대표이자 당시 지지율 1위인 차기 대권 주자가 너무 굽힌 건 아닙니까.

“나는 그게 옳았다고 봅니다.”


―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박근혜 지지층’의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청와대에 고개 숙이는 모습을 자꾸 연출한 것 아닙니까.

“그건 절대 아닙니다. 나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일선에서 총대를 멨습니다. 근현대역사교실 만들어서 역사교과서 문제를 고발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을 성공하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인 ▲공공개혁 ▲노동개혁 ▲금융개혁 ▲교육개혁을 이루려고 노력했습니다.”


― 그 과정에서 한때는 28주 연속으로 차기 대권 주자 중 1위를 기록했는데 왜 갑자기 지지율이 빠진 겁니까.

“‘유승민 파동(2015년)’이 터진 다음부터 지지율이 내려갔습니다. 대통령은 유승민을 죽이라는데, 나는 못 죽인다고 해서 싸움이 난 거예요. 그게 2016년 총선 당시 ‘공천 파동’으로까지 이어집니다.”(3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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