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황교안, 친박 ‘유승민 비토’ 묵살하고 통합 밀고 가야”
[신동아 단독] 김무성 “황교안, 친박 ‘유승민 비토’ 묵살하고 통합 밀고 가야”

● 안철수, 애국심 있다면 反文으로 뭉치자

● 黃 주변 친박 득세, 자기 리더십 밀고 가는 힘 약해

● 朴은 불통, 이병기 비서실장과도 독대 딱 두 번

● 문재인은 노골적 독재자…말을 못 붙이게 한다더라

● 좌파들 ‘주린 자가 배를 채우듯’이 막 처먹고 있다

● 분란 생길까 참아왔는데 친박이 역사 왜곡하고 있어

● 분열된 우파가 살기 위해 ‘닥치고 통합’해야

● 朴 하달 6인 뺀 비례 공천, 현기환·최경환·서청원이 해

● 공천 파동 책임 김태호, 이번에 ‘컷오프’해야

● 박근혜와 화해할 방법만 있다면 화해하겠다

● 총선 불출마 번복 없다…나 하나라도 약속 지켜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적막감이 흐른다. 의원과 보좌진이 민심(民心)을 갈구(渴求)하러 지역 구석구석 발품을 팔고 있던 참이다. 불 꺼진 채 닫힌 문이 미래에 대한 초조함을 오롯이 드러낸다. 어느 방 앞에는 A4 용지 한 장만이 외로이 나부낀다. 흰 바탕 위에 새겨진 ‘010-XXXX-XXXX’ 따위의 숫자만이 아스라이 보인다. 선거가 막을 내리면 떠날 사람과 남을 사람, 새로 방 한 자리 꿰찰 사람이 정해질 터다.

706호의 주인은 벚꽃이 떨어지면 스스로 정든 회관을 떠난다. 풍운아(風雲兒) 김무성(69) 자유한국당 의원. 한때 28주 연속 대권 지지율 1위를 기록했던 그는 지금의 이낙연 전 국무총리보다 더 강력한 대권주자였다. 그런 그가 2018년 6월 “새 보수 재건을 위해 바닥에서 헌신하겠다”면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영하의 날씨에 입김이 하얗게 피어오르던 1월 10일 오전 10시. 기다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자마자 그가 특유의 저음으로 운을 뗀다.

“나도 이제 정치를 마감하고 결산하는 입장에 있다. 모처럼 하는 인터뷰이니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제대로 나가길 바란다. 공인이 삶에서 추구하는 결론은 결국 애국이다. 어떻게 해야 애국적인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지.”

“이 실장, 당신 대통령과 독대 몇 번 했소?”

-박근혜 정부는 권력을 자의적(恣意的)으로 행사하다가 무너졌다. 문재인 정부를 두고도 같은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대통령을 뽑았는데, 뽑힌 대통령은 자신을 왕으로 착각한다. 완전히 왕정(王政)이다. 나는 민주화 투쟁을 하다 정치에 입문했다. 아무리 존경하는 지도자더라도 하는 행동이 비민주적으로 흐를 때는 저항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박 전 대통령과 나 사이도 그것 때문에 틀어졌다. ‘당신은 우리의 대표이지, 우리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과 나는 정치적 동지다’ 이런 생각이었는데 박 전 대통령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상과 하’의 개념이었다. 거기서부터 나하고 비극이 시작된 거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말할 때면 그는 비극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박 전 대통령은 ‘하극상’이나 ‘색출하라’는 말을 잘 썼다. 사고의 비민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야. 그래서 그런 비극이 온 거고.”

김 의원은 오랫동안 권력 분산을 위한 개헌을 역설해 왔다. 문제 인식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1993년, 그러니까 그가 청와대 민정비서관이던 시절에 다다른다.

“청와대 있을 때 국정원, 검찰, 경찰, 기무사 등 우리나라 최고 정보기관에서 온 정보보고서를 다 봤다. 권력자가 거기에 길들면 큰일 난다. 한군데 빠져들지 않으려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그걸 일절 안 했어. 불통이야 불통. 당 대표인 내가 아무리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나줬고.”

그는 이 대목에서 “불통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요?”라고 반문하며 이렇게 부연했다.

“비서실장 독대를 안 했다. 이병기(전 비서실장) 구치소 면회 가서 ‘이 실장, 당신 대통령과 독대 몇 번 했소?’ 물었더니 ‘비서실장 되고 들어가는 날 한 번, 그만두고 나오는 날 한 번’ 이렇게 두 번 했다고 하대. 믿어지나? 이병기만 그랬나. 김기춘(전 비서실장)도 못 만난 거요.”

-김기춘 실장은 박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병기가 측근 아니면 비서실장 시켰겠나? 김기춘도 전부 전화(지시)였지.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하루에 수십 통 떨어진다는 거요. ‘이러세요. 저러세요’ 일방적인 지시지. 쌍방향 대화가 아니고.”

김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은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깨끗한 사람”이라면서도 “하지만 제왕적 권력의 그늘에 최순실 같은 사람들이 기생했다. 권력자가 모르는 새 부정이 싹트는 것이 제왕적 권력 구조”라고 일갈했다. 이내 그는 말머리를 문재인 대통령으로 돌렸다.

“문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에 만나서 ‘대통령 되면 당신 손으로 제왕적 권력구조를 개헌하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사람의 문제지, 시스템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하면 다르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래? 당신 대통령 되면 3년 안에 권력형 부정 터지고 레임덕이 올 것이다. 두고 봐라’라고 예언했다. 그게 ‘조국 사태’다. 조국이 그렇게 흉측한 X인 줄 대통령이 알았겠나?

나는 사업하다가 민주화 투쟁을 했다. 나 때문에 군사독재 정권하에 집안 회사가 피해 보면 안되겠다 싶어 주식을 싹 다 팔아 현금화해서 정기예금 해놓았다. 그 후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정기예금 해놓은 돈의 이자 수입 이외에는 다른 건 일절 생각도 안 했다. 명색이 사업한 사람인데 그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 사면 오른다는 걸 몰랐겠나? 조국은 공직자 재산 실태를 관리하는 민정수석으로 있으면서 다른 짓을 했잖아. 그런 조국을 보호한다고 대통령부터 시작해 유시민, 정의당, 또 민주당 의원들까지 얼마나 한심해. 그중 가장 한심한 게 박지원이요. 왜 다른 당에 있으면서 조국 변호한다고 자기 명예를 팔아먹느냐 이거야. 정말 구토증을 느낄 정도다.”

“문 대통령은 완전히 노골적인 독재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2016년 2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 연설을 마친 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 두 번째)와 원유철 원내대표(오른쪽 첫 번째),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왼쪽 첫 번째) 등과 함께 국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김 의원은 “좌파들은 집권하면 깨끗이 할 것처럼 말해대더니 ‘주린 자가 배를 채우듯’이 막 처먹고 있다”고 했다.

그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문 대통령은 내 생각만 옳다면서 나라를 망치고 있다. 퍼주기 복지는 되돌릴 수가 없다. 그렇게 망한 게 아르헨티나, 그리스, 이탈리아, 베네수엘라다.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 꼴로 간다는 걸 믿을 사람이 누가 있나.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은 시장경제 정책을 써서 저렇게 경제 발전을 했는데, 시장경제 정책으로 기적적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은 거꾸로 좌파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써서 나라를 망쳐놓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경제 문제를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이 막 퍼주고 있다. 지난 70년간 부모보다 자식 세대가 잘살았다. 그런데 문 정부 들어와 자식 세대가 부모보다 못사는 나라로 꺾여버렸다. 국가 부채, 연금 부도, 의료보험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재정 적자를 누가 부담하겠나. 우리는 다 살았잖아. 나 죽을 때까지 연금이 부도나리라 생각 안 한다. 이제 미래 세대가 살아갈 때는 연금 부도나게 생긴 거요.”

사적으로 김 의원은 문 대통령의 경남중학교 1년 선배다.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거대 양당 대표(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를 한 인연도 있다.

“자기가 정치인이라면 국정 운영이 어려울 때 ‘김 대표, 한번 봅시다’ 해서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을 수 있는 거 아이가? 그러면 나도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니 허심탄회하게 ‘이 정책은 좋은 뜻으로 하는 거 아는데,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할 수 있지 않겠나. (문 대통령은) 그런 모습이 없다. 탈원전 그게 말이 되는 소리가. 한병도(전 청와대 정무수석), 강기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내 이야기 듣고 싶다고 해서 식사할 때 그 말 했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만 대통령이 생각 바꾸면 지지율 올라간다’고. 메모는 하던데, 말은 그래 안 했지만 표정이 그런 말 전달 못 한다는 식이더라고. 말을 못 붙이게 한대.”

-문 대통령이 말인가?

“그 두 사람한테 들은 말은 아니고, 민주당 중진 중에도 나와 친구 많잖아. 박 전 대통령은 조용한 독재자였다. 독재적 사고를 갖고 있으면서도 겉으로 표현은 그렇게 안 했지. 반면 문 대통령은 완전히 노골적인 독재자다.”

-박 전 대통령이나 문 대통령이 ‘반(反)의회주의자’라는 점에서는 똑같다는 말까지 돈다.

“‘반(反)의회주의자’지. 박 전 대통령은 여당 의원들도 안 만났다. 친박 실세란 사람들 만나서 ‘당신 대통령 몇 번 만났나’ 물어보라.”

-누나라고 불렀다는 의원도 있었는데.

“친박 실세라고 하는 의원들이 아무도 박 전 대통령을 못 만났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탄핵이 어쩌고 무슨…. 아휴 한심해가지고. 탄핵이라는 게 갑자기 통과된 게 아니라 여러 절차를 다 거쳤잖아. 수많은 의총을 열고 심지어 본회의 표결하러 갈 때도 의총을 열었다. 그때 한 명도 나한테 (탄핵하지 말자고) 말한 사람 없다. 친박을 만든 사람이 나다. 최경환도 내가 친박에 포섭한 사람이다. 나한테 ‘탄핵하지 말자’고 전화 한 통 없었다. 지금 와서 탄핵을 주도한 김무성이 역적이고, 유승민과는 통합 안 된다? 그게 대체 말이 되는 소리요?”

“이X들 해도 너무해”

보수진영은 여의도 안팎에 널따랗게 퍼져 있다.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우리공화당, 보수 성향 시민단체가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영 안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한국당 의원들 개개인에게도 친박과 비박 혹은 잔류파와 복당파 같은 다양한 라벨이 붙어 있다. 한편에서 이들은 ‘반(反)문재인’이라는 연결고리로 끈끈한 유대를 과시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 이들은 ‘탄핵’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통과하지 못한 채 파편처럼 흩어진다. 그 한복판에 ‘정치인 김무성’이 있다.

-2016년 당시엔 상당수가 탄핵에 찬성하지 않았나?

“(탁자를 내리치며) 새누리당 국회의원 중 찬성 62표, 반대 57표로, 찬성이 반대보다 5표 많았고 거기에 기권이 7표, 무효가 2표였다. 기권과 무효는 찬성이나 마찬가지다. 그 사람들이 반대할 줄 몰라서 반대 안 했겠나? 찬성하려 하는데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라는 것 때문에 기권, 무효 택한 거지. 최경환은 표결 안 하고 퇴장했잖아. 퇴장할 시간 있으면 나한테 찾아와서 ‘중단하자’고 이야기해야지.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 수십만 명이 모이고 집회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대통령 지도력은 완전히 상실되고 국정은 마비돼 있는 상황인데 대통령이 하야하는 게 옳은가, 법적 절차(탄핵)를 밟는 게 옳은가?”

-절차를 밟아서 질서 있게 퇴진하는 게 낫지 않겠나.

“그렇지. (탁자를 내리치며) 대통령이 하야했으면 민중봉기에 의한 헌정 중단 아니가? 그런데 2016년 11월 28일에 친박 8명이 모였다(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서청원, 정갑윤, 최경환, 홍문종, 유기준, 정우택, 윤상현, 조원진 의원이 서울 마포의 한 식당에서 비공개 오찬 회동을 했다). 8명이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이 ‘도저히 수습이 안 되고 대통령이 탄핵의 불명예를 안게 할 수는 없으니 하야를 건의하자’는 거였다. 8명이 헤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허원제 당시 정무수석한테 전화를 한다. 모여 있는 사람 명단 불러주고 ‘하야를 건의한다’고(당시 8인은 이를 ‘명예퇴진을 건의하자’고 주장했다).

그래놓고 지금 와서 김무성이 역적이고 배신자다? 누가 배신자요? ‘당신 이제 대통령 못 하니까 당장 그만두시오’가 배신자가, 아니면 ‘법적 절차를 밟자’가 배신자가? 내가 말을 할 줄 모르나, 머리가 나쁜 X이가. 왜 그간 이 말을 안 했겠나. 내가 그 말을 하면 당에 분란이 생기니까 지금까지 참아왔다. 그런데 이X들 해도 너무해. 역사를 왜곡하고 있잖아요.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또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해야 해. 감옥에 들어앉아 있는 여성 대통령을 밖에서 사내대장부가 비판하는 것이 싫어서 지금까지 말을 안 했던 거요.(큰 한숨)”

이 대목에서 그는 “자신보다 김진태 의원이 먼저 탄핵을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11월 3일에 김진태가 ‘국정이 마비됐으니 법대로 탄핵 절차를 밟으면 자기는 탄핵에 반대하겠다’고 했다. 그 열흘 뒤(11월 13일) 내가 탄핵을 주장했고.”

한편 김진태 의원은 1월 10일 MBC 라디오에 나와 “황교안 대표가 (유승민 의원 측의)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요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나중에 큰 후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캐스팅보트인 중도 유권자들은 탄핵에서만큼은 진보 유권자와 의견을 같이한다. 보수가 탄핵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정리하지 않으면 이들은 무당파로 남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피 터지는 논쟁을 통해서라도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늦었다. 나는 (탄핵 논쟁을) 피할 생각은 없는데, 탄핵은 역사에 맡기고 묻어놓고 가야 한다. 탄핵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말고 국민의 판단에 맡기자는 거지. 우리공화당에서 탄핵을 되돌릴 수가 있나? 아니면 탄핵된 대통령을 다시 불러서 대통령 시킬 수가 있나?”

“살기 위해 통합해야지 무슨 방법 있노”

-민심(民心)은 정권과 여당도 싫지만 한국당은 더 싫다고 한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한국당에 대한 반감이 유독 심하다.

“결국 친박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그런 거요. 2017년에 박 전 대통령만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친박이 탄핵당한 것이다. 그런데 황 대표 주변에 친박이 다 득세하고 있잖아. 국민들은 그게 꼴 보기 싫은 거지.”

-황 대표의 리더십은 어떻게 평가하나?

“황 대표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친박한테 신세 진 일 있느냐. 비박하고 원수진 일 있느냐. 국민적 기대가 당신한테 있으니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하라’고 어드바이스했다. 그런데 아직 자기 리더십을 밀고 가는 힘이 약하다. 국민들은 여의도 정치하는 놈 꼬라지 보기 싫어 안철수를 택했다가, 이번에는 황교안을 택한 것 아닌가. 황 대표가 그런 여망을 제대로 담아내질 못하니 지지율이 빠지는 거지.”

그러면서 김 의원은 “분열된 우파가 ‘닥치고 통합’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선거가 다가오면 탄핵 이야기 안 하겠지 하고 기다려왔는데, (탁자를 내리치며) 지금도 황 대표가 통합하려 하니 (친박이) ‘유승민하고 왜 통합하느냐, 안 된다’ 해서 멈칫거리고 있잖아. 황 대표가 묵살하고 밀고 가야지. 선거 지면 황교안이건 유승민이건 그걸로 끝이요. 살기 위해서 두 사람이 통합해야지 무슨 방법이 있노.”

1월 9일 MBN은 “한 친박계 의원은 “유승민 의원과 통합하면 탈당하겠다”고 했고, 또 다른 의원은 “대구에선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황 대표가 민심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유승민 의원과 통합하면 탈당하겠다는 친박 의원들도 있는데.

“어떤 X이야? 탈당하라 그래.”

-우리공화당으로 갈 수도 있지 않나?

“그러면 그 X 죽는 거지. 누군지 모르지만.”

-황 대표 리더십이 약하다 보니 이런 일이 빚어지는 것 아닌가?

“황 대표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 앉혀다가 설득하고 눈물로 호소하면 안 흔들리겠나? 황 대표 단일 지도체제고 공천권을 갖고 있다. 또 미래 권력이 될 가능성이 현재 우파 중엔 1등이다. 밀어붙일 땐 밀어붙여야지.”

-보수 통합의 대상을 어디까지로 보나? 유승민 의원 세력에 더해 안철수 전 의원 세력을 아우르는 통합인가?

“다 해야지.”

-다 해야 한다면 이정현, 이언주 의원까지 포함하는…?

“이정현, 이언주까지 당위적으로는 우파가 다 통합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게 되겠느냐 하는 데에는 나도 의문이다.”

-‘중도보수 대통합을 위한 혁신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인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우리공화당은 지금 당장 통합 대상은 아니라면서 선을 딱 그어버린 모양새던데.

“아니 저쪽(공화당 측)에서 탄핵 세력과 같이 못하겠다고 하니까 박형준 입에서도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지. 탄핵은 묻고 가자고 다 합의를 봤는데, 공화당에서 저렇게 나오니까. 문 대통령도 40%만 보고 정치하는데, 여기(우파)도 40%만 결집하면 이길 수 있단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중간지대를 안철수가 파고 들어가려 하는 거고. 안철수도 애국심을 가졌다면 이번 선거에서는 이쪽(우파)과 손잡아야 한다. 그다음에 자기 대권 경쟁을 해야 한다. 안철수에게 ‘애국심으로 반문연대의 길을 같이가자’고 호소하고 싶다.”

-한국당이 ‘강성 시민단체’처럼 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한국당 안에서도 ‘장외집회 피로증’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장외집회 이제 그만해야 한다. 지역 사정을 모르는 짓이다. 1월 1일에 당사에서 단배식을 했다. 이튿날 국회 앞마당에서 국민께 세배하는 행사를 했다. 그러고 다음 날에 광화문 가서 집회했다.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은 반(半) 죽는 거요. 부산서 올라오려면 새벽 5시 차 타야 한다. 또 내려가면 새벽 1~2시다. 이걸 사흘 연속 한다고 생각해 봐라. 무슨 짓인가. 이젠 지역밀착으로 가야지.”

“6명 빼고 비례 공천 누가 했느냐 이거야”

2016년 3월 20일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20대 총선 후보 경선 지역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마친 뒤 당사를 나서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20대 총선을 두 달여 앞둔 2016년 2월 4일. 새누리당은 이한구 당시 의원을 공천관리위원장(공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김무성, 이한구 두 사람은 악연(惡緣)이다. 당사자인 ‘전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의 회고를 들어볼 시점이다.

“청와대에서 이한구를 공관위원장 시키겠다고 해서 내가 반대했다. 서청원은 표결하자고 하고. 표결하면 뻔히 내가 지는데.”

다음은 김 의원이 전한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의 대화 한 토막.

김: “이한구는 절대 안 된다. 느그도 컨트롤하기 어려울 거다. 대통령 만나야겠다.”

현: “형님, 왜 이러십니까. 다 아시면서”

김: “(대통령과) 전화라도 하자. 표결하면 내가 지게 돼 있는데 무슨 방법이 있나. 전화로라도 (대통령에게) ‘이한구 아니면 누구라도 받겠다’고 말하겠다.”

그는 “그랬는데 전화도 안 바꿔줬다. 다들 나보고 ‘왜 그때 못 싸웠느냐’ 그러는데, 청와대 압력을 받는 최고위원들이 표결하자 하면 무슨 방법이 있나. 당시 최고위는 대표 포함 9인이 한 표씩 행사했는데 7명은 청와대 뜻만 따랐다”고 했다.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천과 관련해 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살생부’다. 2016년 2월 24일. 김무성 당시 대표는 ‘청와대의 뜻’이 담긴 살생부 40여 명의 명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재오, 유승민, 정두언, 김용태, 김세연, 김학용, 김성태, 박민식 등 비박계 의원들과 친박 중진인 서청원, 이인제가 포함된 명단이었다.

하지만 홍문종 우리공화당 대표는 지난해 11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살생부는 없었다”면서 “당시 김무성 전 대표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나름 거대한 계획이 있었다. 그 계획의 목적으로 지라시를 동원했다고 의심할 여러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김 의원이 있지도 않은 살생부를 이용했다는 취지로 인터뷰했던데.

“지라시 아니다. 신동철(전 박근혜 청와대 정무비서관)이로부터 받은 정보다. 당시 현기환이 청와대 정무수석 간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신동철한테 의존을 많이 했다. 신동철이 사실상 실무 총책임자였는데, 자기와 형제 같은 사이인 A한테 명단을 쭉 불러주면서 이야기한 거다. 그래서 그 정보가 우리한테 들어온 거지. 친박 정치인도 자른다고 돼 있으니 신동철이가 ‘이 XX들 진짜 나쁜 X들이다’라고 말한 거고. 그 말인즉슨 신동철이 아닌 다른 데서 명단이 만들어졌단 것 아니겠나. 그게 누구겠노? 현기환한테서 왔겠지.”

이와 관련해 김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신동아’ 1월호에 “2016년 청와대가 비례대표 후보 선정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박 대통령의 뜻이라며 반드시 당선돼야 할 비례대표 후보로 이한구에게 전달된 명단은 총 6명이었다. 그중 당선된 사람은 강효상, 유민봉, 최연혜, 신보라, 김현아 등 5명”이라고 밝혔다.

-6명의 비례대표 공천 명단을 당시 청와대에서 하달했다는 건 사실인가?

“청와대에서 명단을 6명밖에 안 보냈다는 것부터가 놀라운 사실이지. 그렇다면 또 의문이 생기지. (당 대표였던) 나는 처음부터 비례대표에 내 사람 한 명도 안 심겠다고 선언했다. ‘슈스케’ 방식으로 분야별로 공천 신청을 받아 토론 붙여 점수 매기고 후보를 선정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이 깨져버리고 이한구 손에 넘어간 거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당시) 비례대표는 청와대가 다 내려보낸 줄 알았다.”

-6명뿐 아니라 전체 모두를?

“그렇다. 그럼 6명 말고 나머지 비례대표 공천은 대체 누가 했느냐 이거야. 당 대표 빼고 다 갈라 먹었다는 말 아니요? 그때 누가 실세였는지 보면 다 알지. 현기환, 최경환, 서청원 등이 다 해먹었다는 소리요. 그러니 더 기가 막힌 거지.”

당시 새누리당은 총 44명을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했다.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의 지지율을 감안해 22번 안팎까지 당선 안정권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최종 득표율은 33.50%에 그쳐 17번까지 당선됐다.

그러면서도 김 의원은 “강효상, 유민봉, 최연혜, 신보라, 김현아 공천은 잘했다고 본다. 다 한가락 하는 사람들 아니가”라고 덧붙였다.

“김태호, 무슨 낯짝으로 고향 출마하나”

-장 소장이 김 의원 보좌관이었으니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다.

“이 말(비례대표 명단 하달)은 그전에도 나왔었다. 성철이가 전에도 말을 했지. 그렇다면 성철이는 누구한테 들었느냐? 그건 상상에 맡기겠다.”

기자는 김 의원과 인터뷰한 직후 장 소장과 통화했다. 장 소장은 “(비례대표 명단 하달과 관련해) 나는 알고 있었지만 김 의원은 그전까지 몰랐다”라고 했다. 당시 최고위원회에는 김 대표를 비롯해 서청원, 김태호, 이인제, 김을동, 이정현, 안대희 최고위원과 원유철 원내대표 김정훈 정책위 의장 등이 있었다. 김 의원은 “최고위에서 상향식 공천을 주장하는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은 김을동 의원 한 사람뿐이었다. 표결하면 7:2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최근 페이스북에 “20대 총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당시 최고위원과 공관위원들, 그리고 당이 이 지경이 된 데 책임 있는 중진들은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주장했던데.

“지금 우파의 위기가 탄핵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의 불통에서 시작됐다. 그 뒤 공천 파동 탓에 우리가 제2당이 돼버려 빚어진 일이다. 공천 잘못해서 이렇게 됐으니 여기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불출마로 사죄(謝罪)해야 할 것 아닌가. 최고위원 중 안대희를 뺀 나머지 8명은 불출마해야 한다(안 전 대법관은 총선을 3개월여 앞둔 2016년 1월 21일에야 지명직 당 최고위원으로 임명됐다). 공천 신청하더라도 공천 주면 안 된다. 당시 공관위원들은 지금 대부분 출마할 상황이 못 된다. 딱 한 사람, 홍문표가 문제다. 홍 의원 지역구가 홍성·예산인데, 이 사람 아니면 당선될 수 없는 지역이다. 그게 고민이야. 안 주면 뺏기는데.”

-그럼 당시 최고위원 8명만 불출마하면 되는 셈인가?

“그렇지. 단, 수도권 험지에 가서 떨어지더라도 한번 붙어보겠다면 (공천) 줘야지. 김태호가 거기에 해당이 돼.”

-김 전 의원은 이미 고향인 경남 거창에서 출마를 선언했는데.

“(거창에) 공천 주면 안 된다. 20대 때 공천 그렇게 망쳐놓은 장본인이 무슨 낯짝으로 고향 가서 출마하나.”

-평소 주장대로 여론조사를 통해 경선하면 김 전 의원의 승리 가능성이 높지 않나?

“그러니 ‘컷오프’ 해야지.”

-대구·경북(TK)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은 전무한 상태다. 도리어 ‘나갈 사람은 요지부동이고, 남을 사람만 나간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세연, 김영우, 김도읍 이런 친구들은 앞으로 당을 끌고 나갈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다 그만두고 그만둬야 할 사람들은 안 그만두니까 기가 막힐 노릇 아이가. 이 친구들이 왜 그만두겠어. 그만둬야 할 놈들이 안 그만두니까 보란 듯이 ‘쇼크 받아라’ 하고 그만둔 거거든. 그걸 왜 모르느냐 이거지.”

-공천에 관여한 중진뿐 아니라 당시 ‘공천 파동’에 의해 당선된 ‘친박 초선’ 의원들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뭐 그까지는 번지게 하고 싶지 않다. 박근혜 정권 몰락에 책임이 있던 사람들, 뭐 이정도 하면 되지.”

“박근혜와 화해할 방법만 있다면야…”

김무성 의원은 “황교안·유승민이 살기 위해서라도 통합해야지 무슨 방법이 있나”라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정치인 김무성’이 권력 분산형 개헌과 양 갈래로 주장해 온 정치개혁 방안이 바로 ‘상향식 공천’이다.

“내가 당 대표 할 때 여당의 무덤이라는 보궐선거에서 전부 이겼다. 상향식(여론조사)으로 공천한 덕이다. 모 실세가 특정인을 강력히 추천한다는 건, 사실 자기 ‘꼬붕’ 심으려는 거 아니가. 거기다 플러스 요인이 돈이다. 나는 여당 대표 재임 중 공천하면서 내 사람 하나도 안 심고 돈 1원도 안 받았다. 그냥 타협해서 ‘대통령 다 추천하시오. 나 다 받아줄게. 나도 좀 심어야겠다.’ 그러면 내 사람 수십 명 챙겼지. 돈 갖고 오는 거 받았으면 수백억 챙겼을 거다.”

공천은 보수통합 과정에서 가장 중대한 변수다. 김 의원은 “통합에는 지분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나오게 돼 있다”면서 자신이 구상한 대안을 소개했다. 열쇳말은 역시 ‘상향식 공천’이다.

“한국당 울타리를 없애고 당명도 바꿔야 한다. 외부 인사가 장벽 없이 들어와 희망 지역에 공천 신청하고, 공천권은 주민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당원 50%, 국민 50% 비율로 공천했는데 이번에 한해서는 당원께는 미안하지만 국민에게 결정권을 줘야 한다. 이렇게 하면 신당 만들 필요도 없다. 언제 신당을 만드노. 시간도 없다.”

이 대목에서 그는 “그쪽(새보수당)에서도 그걸(신당을) 꼭 원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형준 교수는 1월 9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2월 10일 이전에 신당을 창당하고 통합 합의 이후 양당이 공천심사위를 함께 구성하는 게 맞다고 했다.

“신당 꾸리려면 당 해체부터 해야 하는데, 해체하려면 또 전당대회 열어야 한다. 찬성만 하겠나? ‘왜 우리가 당을 해체해야 하느냐, 탄핵에 찬성한 놈들이 뭔데 들어오게 하느냐’ 이렇게 싸움 일어난다. 그전에 이런 방법을 통해 합의하는 게 좋다. 컷오프할 사람은 하고. 그래야 세대교체가 되지. 동료 의원들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이젠 청·장년 중심으로 당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컷오프를 누가 하느냐의 문제로 다시 귀결되는데, 결국 공천심사를 할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나?

“우리 당에서 먼저 컷오프해야지. 저쪽(새보수당)은 컷오프할 만큼 사람 있는 것도 아니고.”

-보수통합을 위해 황 대표가 물러난 후 통합 비대위가 꾸려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황교안 체제는 유지돼야 한다. 비대위는 황 대표 그만두란 소리 아니가. 그만두면 황 대표는 그걸로 끝나는데….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지금 생긴 통추위가 이거(비대위)와 마찬가지다. 이걸로 대체하면 된다.”

-통합을 위해 갈등의 골이 깊은 친박·비박이 화해해야 하고, 상징적 제스처로 김 의원과 박 전 대통령 간 화해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 전 대통령과 만나서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화해한다. 그런데 아무도 안 만나주니까 가능하겠나.”

-여권이 보수 분열을 목적으로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수개월째 회자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하리라 보나?

“대법원 판결만 나면 무조건 사면하리라 본다.”

-바른정당은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 실험이기도 했지만, ‘개혁보수 정당’ 실험이기도 했다. 바른정당에서 너무 이르게 철수해 버린 것 아닌가?

“지방선거 때 한국당하고 바른정당하고 각각 공천해서 이길 수가 있나. 그러니 ‘돌아가자’ 이래 된 거지. 우리는 실패했으니까. 유승민은 ‘노’해서 절반은 잘라서 왔고. 그렇게 해서 지방선거 이겼으면 괜찮았을 텐데 홍준표가 망쳤잖아.”

“국회의원 6번 했는데 한 번 더 하면 뭐하노”

-그 뒤의 유승민 의원 행보는 어떻게 평가하나?

“유승민은 개혁보수로 자기 브랜드를 만들었지. 유승민하고 합쳐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가치가 높아졌고. 유승민은 절반의 성공을 한 거지.”

-한국의 보수 세력은 건국과 산업화에 기여했다. YS계는 민주화의 주역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보수우파가 지도자 중심 이합집산, 계파주의 등으로 위기를 자초했다.

“민주화 투쟁 세력과 산업화 세력이 통합한 3당 합당 정신을 이념화했어야 했다. 그런데 YS계가 JP(김종필 전 총리)를 쫓아내 버렸다. 거기서부터 우파 분열이 시작됐다. 지금 생각하면 잘못한 거지. JP 세력만 나갔나. 충청도가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우리 국민이 토사구팽(兎死狗烹)을 가장 싫어하잖아.”

이 대목에서 김 의원은 “자꾸 나보고 계보의 수장이라고 하는데, 비박은 언론에서 붙인 용어로 실체가 없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국회의원 개개인은 정의감이 투철한 최고의 지성인이다. 그런데 집단화되면 개판이 돼버려. 사람 중심 붕당정치를 해왔기 때문이요. 친박, 친문, 친이 다 후진적 용어다. 지금 선거 공보에 ‘나는 친박입니다’ 할 사람 누가 있노. 붙이면 떨어지게 돼 있는데. 이번 선거 끝나면 친박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게 돼 있다. 현역 의원들이 있으니까 언론에서 자꾸 이야기를 하는데, 현역 아니면 보도가 되겠나. 그런데도 아직까지 ‘박근혜. 박근혜’. 완전히 박근혜의 정치적 노예 아닌가.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 가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보수통합과 혁신을 성공리에 이뤄내면 총선 불출마를 번복하고 전격적으로 수도권 험지에 출마할 수 있나?

“나 한 명이라도 약속을 지킨 정치인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고 국회의원 6번 했는데 한 번 더 하면 뭐하노.”

6선의 고지에 오르는 동안 그에게는 부침이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초인 2008년 18대 총선 때는 ‘친박’이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미래권력으로 불리던 2012년 19대 총선 때는 ‘친박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역시 공천에서 배제됐다. 그 자신이 당 대표가 돼서는 사실상 ‘왕따’를 당했다.

“극히 비민주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정치 지도자가 돼 우리 정치가 퇴보해온 점이 나는 정말 한스럽고 비통하다. 나는 민주화운동 하던 사람이라 권력에 아부하고 싶지 않아 어찌 살다 보니 비주류가 됐다. 지금은 최고봉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쓸쓸하게 떠난다 생각하니 마음 아프지. 그러나 그건 뭐 내 운명이지. 남을 원망할 것도 없고.”